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롱런은 신이 나야 하는 것
2020.08.24 12:00 HS Ad, 조회수:480
 
 
계산해보니 달리기를 시작한 지도 이제 일 년 정도 된 것 같다.
 
일 년 ‘정도’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까닭은 처음 달렸던 날짜를 정확히 기록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달린 지 일 년 정도 되었겠다고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확실한 기억이 있다. 달려보자고 큰맘을 먹고 집을 나설 때 내가 입었던 건 하늘색 반바지와 얇은 반팔이었다는 사실, 그날의 하늘이 내 반바지와 거의 흡사하면서 눈이 부신 색이었다는 사실, 뛰기도 전에 무척 더웠다는 사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달리는 것을 멈추었더니 이때다! 라는 듯이 얼굴에서 땀이 일제히 솟구쳐 턱으로 흘러내렸다는 사실. (나는 얼굴에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 이 특별할 것 없는 일이 굉장히 파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땀이 턱선을 타고 흐르다니!) 이런 사실들을 떠올리는 2020년 여름의 나는 대충 1년 전인 2019년 여름에 달리기 시작했을 거라고 마음대로 정리해버렸다. 
 
가을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을 때 달리기 전용 어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아 나의 달리기는 비로소 규칙적인 일이 되었다. 이것은 첫 시작일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2019년 10월 15일.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달리기 전에 어플을 켜고 그저 묵묵히 8주짜리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했다. 처음엔 1분을 뛰고 2분을 걸었다. 마지막 날에는 30분 동안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나는 사랑에 아주 깊이 빠졌다. 당연히 달리기라는 운동이 내 깊은 사랑의 주인공이었지만 그것은 한편 확실함과의 사랑이기도 했다. 하면 할수록 나아진다는 확실함. 지난번에 1분을 뛰었으면 이번에는 2분을 뛸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3분을 뛸 수 있겠다고 간단하게 앞날을 맞췄다. 적금처럼 나는 착실하게 훌륭해졌다. 
 
그런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삶은 늘 불확실함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그것은 절대 실력이 차곡차곡 쌓이며 점점 나아지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앨범 한 장을 내면 그다음 앨범은 만들기 더 쉬워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책 한 권을 쓰고 나면 그 다음번엔 자연스레 더 좋은 책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반복해도 언제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황량하고 막막했다. 이번에 만든 내 음악과 책이 사랑을 받을지 외면을 받을지는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하게 준비했느냐보다 그저 시절과 상황이 만드는 절호의 운에 더 많이 달려있었다. 그 불확실함에 익숙해지려고 용을 쓰다가도 번번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놀랐다.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졌느냐고 물었다. 후광이 나네 후광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예뻐 보이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요즘 달리고 있거든요.”
 
요즘 누구 만나고 있거든요, 라고 말하는 느낌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사랑을 소개했다. 노래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보다 달리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마치 엄마보다, 아빠보다 이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는 느낌으로.
 
나는 달리기를 더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달릴 때마다 내 몸의 모든 변화에 촉을 세웠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근력의 필요성이었다. 뛰고 나면 배에 하도 힘을 주어서 배가 뻐근하게 아팠다. 달리는 일에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두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배의 힘이 필수적이었다. 바로 체육관에 등록해서 PT를 신청했다.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트레이너가 물었을 때 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왔으니 코어를 조져달라고 주문했다. 트레이너는 잘 달리려면 코어뿐 아니라 엉덩이 근육도, 등 근육도, 심지어 어깨와 팔근육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뒤로 9개월간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푸시업, 풀업, 렛풀다운, 시티드 케이블 로우, 벤티드 오버 바벨로우 등등 어렵고 멋있는 이름을 가진 부위별 근육운동을 일주일에 두 번씩 착실하게 배웠다.
 
근력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연성도, 관절도, 리듬감도 중요했다. 달릴 때 선크림 바르는 것을 우습게 알면 몸이 창피한 모양으로 그을린다는 것도, 너무 달리는 일에 욕심을 부리면 틀림없이 다치게 되고 그러면 몇 주간이나 달리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된다는 것도 몸소 체험하며 배웠다. 근육 생성에 도움이 되는 비건 단백질 파우더부터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도 여러 개를 사 먹었다.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듯이 마냥 좋기만 한 미래를 계획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일단 지금 10킬로는 껌이니까 아예 처음부터 하프 마라톤을 목표로 해야겠다, 풀마라톤은 이때쯤 뛸 수 있겠다, 세계 10대 마라톤에도 다 도전해 봐야겠다, 그리고 그 도전기를 책으로 엮어야겠다, 그나저나 코로나가 끝나야 해외 마라톤도 가능할 텐데 대체 언제 끝나려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에 ‘아니 근데 왜 체육관을 9개월밖에 다니지 않았는지?’라고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즈음 내 사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달리기의 ‘확실함’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징후는 점점 느려지는 페이스에서 시작됐다. 
 
이상하다. 왜 꾸준히 달리는데 기록이 점점 안 좋아지지. 초조했다. 주변에서는 여름이라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금방 지치니까 기록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해. 마음 편하게 먹고 하던 대로 꾸준히 달리면 가을 즈음에 다시 페이스가 좋아질 거야.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발바닥과 발목의 통증이 점진적으로 심해졌던 것이다.
 
‘스트레칭과 마사지로는 통증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 그것은 일회성일 뿐이다. 튼튼하고 강력한 근육을 갖게 된다면 마사지나 스트레칭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이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발바닥을 주무르며 보았다.  
 
나는 근육단련에 더 매달렸다. 힘들면 3세트만 해도 된다는 트레이너의 말에도 기어이 5세트를 채웠다. 세트와 세트 사이에는 까치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발목강화운동을 했다. 그런데도 발바닥과 발목 통증은 호전되지 않았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정밀검사가 아닌 다음에야 통증 주사나 소염진통제를 처방해줄 뿐이었다. 속 터지는 마음으로 먹으라는 약을 일단은 고분고분 삼켰다. 
 
신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자세교정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어디 병원이 잘한다, 주변에서는 이래라저래라 참견이 심했고 그것은 또 그것대로 스트레스가 되었다.
 
“대체 문제가 뭘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나는 체육관 바닥 매트에 누운 채 말했다.
 
트레이너는 말없이 내 한쪽 다리를 잡고 고관절 스트레칭을 돕고 있었다.
 
“역시 나이 때문일까요.”
 
“나이요?”
 
“저 올해 마흔이잖아요. 보통 나이 앞자리 수 바뀔 때 늙는다는 체감이 확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고 한다던데 전 조금도 그런 게 없었거든요. 정말 신경이 조금도 안 쓰였여요. 그런데 제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발바닥도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실은 그 밖에도 뛸 때마다 여기저기가 아파요. 게다가 아무리 뛰어도 기록도 더는 좋아지지 않고. 쌤도 아시다시피 제가 발목에 좋다는 것들 이것저것 해봤잖아요. 근데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골골하니까 이제서야 실감이 나고 신경이 쓰여요, 제 나이가. 나이 드는 게 별게 아니잖아요. 되던 게 안되는 거잖아요.”
 
트레이너는 내 한쪽 다리를 든 채로 잠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정말 생각해볼 문제 같아요.”
 
“.....”
 
“저 역시 지금 제 목표를 더 잘하는데 두고 있지 않아요. 최대한 오랫동안 그저 즐겁게 운동할 것을 목표로 두었어요. 계획도 다시 짰고요. 그 계기가 저에게도 나이였던 것 같아요. 수진도 한번 정말 나이 때문인지 차분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게 맞다면 거기에 맞춰 다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보세요. 이건 슬플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변화니까요.”
 
며칠 뒤에 나는 트레이너에게 잠시 운동을 쉬고 싶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무조건 세 번은 달려야 한다는 강박도 떨쳐버리려 노력했다. 체육관에 가는 일과 달리는 일만 멈추었는데 어찌나 할 일이 없는지 백수가 된 것 같았다. 물론 쉬는 중에도 이런저런 일을 했다. 이를테면 나이키의 세일 소식을 악착같이 챙기며 사고 싶었던 러닝화를 다시 한번 묵묵히 들여다본다든지... 초등학생 때 발목이 약해서 보약을 장복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침대에 빈둥빈둥 누워있다가 떠올린 후 난 원래 발목이 약한 인간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졸음에 집중한다든지...
 
 
쉬는 동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하고 있는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도 보았다. 부산에서 열렸던 지난 전시 때의 사진을 보면서 직접 보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안타까워하던 중 알게 된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전에 찾아갔더니 무척 한산해서 나 말고는 관람객이 몇 명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오브제들과 드로잉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서둘러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사진으로만 보았던 피칠갑한 듯 시뻘건 방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피칠갑의 방이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속도를 줄였다. 심장이 둥둥거렸다. 
 
피칠갑의 정체는 붉은 털실이었다. 그것은 아주 복잡하고 집요하게 땅에 고정된 의자들로부터 뻗어 나가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매듭을 짓고 또 매듭을 짓느라고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았다. 섬뜩한 이미지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포근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너무 어려워 아득했다. 영 알 수 없는 내 발목의 문제처럼. 
 
나는 마치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는 내장의 영역으로 들어와 나를 나로 만들어주고 있는 무수한 혈관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분명 나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겠지. 내가 달리는 동안 이 애들이 부단하게 흔들리고 꿈틀거리겠지. 
 
나는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 핏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연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핏줄이 들어야 하므로 내부적으로 말한 것이다.)
 
“나는 널 정말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정말 알고 싶다.”
 
 
한참 후 전시장을 나오면서 이번 전시의 주제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Between Us>.
 
나는 외부의 나와 내부의 나로 갈라진 우리가 되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건너편 카페에 잠시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자고 외부의 내가 제안하며 달려 나갔다. 내부의 나도 그 점에 동의했는지 달릴 때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붉은 방 안에서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았다. 달리기, 내 사랑은 내 음악과 내 글처럼 불확실의 영역으로 영영 가버렸다. 
 
빗속을 잠깐 뛰면서 앞으로도 계속 달리려면 참 갈 길이 멀겠다고 생각하는데 웃음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절망적이었는데, 이상하게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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